12월 29일 금요일

올해 마지막 뉴스네요. 그동안 애독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내년에도 변함없는 많은 응원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

  • 캐나다가 남아메리카의 베네수엘라(Venezuela) 대사관을 캐나다 땅에서 추방하기로 결정하여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Nicolas Maduro) 대통령이 올해 7월에 제헌국회를 새로 출범하면서 야권이 장악했던 의회를 무력화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독재권력을 강화시켰다는 비판을 국제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당시 베네수엘라는 2013년까지 장기 독재를 했던 우고 차베스(Hugo Chavez)가 죽고 나서 살인적인 물가상승과 극심한 생필품 부족을 격고 있었습니다.

 

  • 이에 캐나다는 미국을 따라 반민주적 행위를 이유로 9월 22일에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고위관료 40명에게 제재를 가했습니다. 그리고 캐나다와 베네수엘라 양국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던 도중, 마두로 대통령이 출범시킨 제헌국회의 로드리게스 의장이 12월 23일에 브라질 대사와 캐나다 부대사를 외교상의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로 선언했습니다. Persona non grata 선언은 외교관 국외 추방의 첫 단계 조치입니다. 그동안 베네수엘라 주재의 브라질 대사와 캐나다 부대사는 마두로 대통령과 베네수엘라 여당을 비판해온 바 있습니다.

 

  • 그런데 베네수엘라의 캐나다 주재 대사관도 이미 캐나다에 없습니다. 양국관계가 악화되면서 베네수엘라 측에서 항의표시로 대사관을 자국으로 불렀기 때문입니다. 현재 대사 직무 대행(charge d’affaires)이 업무를 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12월 24일에 외교부 장관 Chrystia Freeland는 베네수엘라 대사를 더 이상 환영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 미국이 기업의 세금감면을 실행함에 따라 캐나다의 큰 은행들도 덩달아 몇백만 달러의 수익을 볼 수 있다는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은 12월 22일 금요일에 상원과 함께 기업세금감면법을 제정하는 안을 확정지었습니다. 이에 Citigroup Global Markets의 분석가들은 캐나다의 가장 큰 4개 은행의 주당 순익(earnings per share, EPS)이 1%~3%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았습니다.

 

  • Bank of Montreal(BMO)가 가장 이익을 보는 은행으로 분석이 되었습니다. BMO는 미국의 중서부에 은행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으며 주당 순익이 약 2.6%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Toronto-Dominion Bank(TD)는 미국 동부에 약 1200개가 넘는 지점을 가지고 있으며 주당 순익이 약 2.3%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Royal Bank of Canada(RBC)는 1.6%의 주당 순익 증가를, 그리고 Canadian Imperial Bank of Commerce(CIBC)는 약 0.9%의 주당 순익 증가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 다른 미국 은행들은 주당 순익이 훨씬 많이 증가할 것으로 보이며, 약 8%~17% 증가율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캐나다 은행은 기업세금감면 효과로 상대적으로 낮은 수익률을 보이는 셈입니다.

 

  • 참고: 주당 순익(earnings per share, EPS)이란?
    주가와 연계하여 주가를 주당이익으로 나눈 수치입니다. 따라서 회사의 이익창출능력이 주가와 기업가치에 어느정도 반영되는지 알려줍니다. 예를 들어 PER이 10이면 해당 기업의 주가가 주당이익의 10배이며 주당이익 1센트가 주식시장에서 10센트로 평가된다는 말입니다.

 


  • 2017년 1월 29일에 퀘벡주의 퀘벡시티 무슬림 사원 모스크(Grand Mosque of Quebec City)에서 6명의 무슬림을 죽이고 많은 사람이 다친 총기난사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때 Aymen Derbali도 7번 발포를 받아 총상으로 사망 위기에 있었습니다. Mr. Derbali는 세 아이의 아버지로 총기난사 사건 때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고자 온몸으로 막으려고 하다가 총알사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비가 되어 병원에서 혼수상태에 2달 동안 누워 있었습니다.

 

  • 그를 도우려는 친구들이 퀘베주 정치인과 총리에게도 연락하려고 노력을 했으나 아무도 연락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The Globe and Mail 신문사가 그를 알리면서 그의 중상치료를 지원하는 기부금이 물밀듯이 들어와 감동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5불 후원금에서 2만5천불의 거액까지, 서부 캐나다의 밴쿠버 섬의 Corner Brook에서부터 중부와 동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후원하였습니다. 캐나다인은 단 1주일 만에 12만4천불을 그의 치료를 위해 모금하였습니다.

 

  •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신문사를 연락해서 Mr. Derbali를 도울 의사를 밝혔었습니다. 이중에는 퀘벡주의 성삼위 성공회 대성당(Cathedral of the Holy Trinity)도 있었으며, 교회는 3월 11일에 그를 위한 모금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 두 달 뒤에 Mr. Derbali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자, 그는 다시 걸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두 총알의 파편이 그의 척수에 아직도 박혀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많은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해서 이렇게 소감을 밝혔습니다. “저는 캐나다인들이 단결(solidarity)을 추구하며 화합아래 살고 싶다는 것을 믿었었습니다. 제가 캐나다 시민권을 신청한 날에 한번도 (캐나다 시민 신청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 다음은 The Globe and Mail에서 작지만 강한 중소기업을 다룬 특집기사를 의역한 것입니다.
Grahame’s Bakery (사진출처=HomeTownTV12)
  • Grahame’s Bakery

  • 장소: 온타리오주의 Kemptville
    1885년에 설립
    생존 전략: 신선한 제품과 양질의 재료 공급에 집중

 

  • 할아버지부터 물려받은 빵집으로, 1주일에 다섯 번 Mr. Grahame은 새벽 2시 반에 출근하여 1885년부터 사용해오던 화덕에 불을 지핀다. 그의 누나이자 공동소유자인 Debbie Wilson은 몇 시간 뒤에 합류해서 함께 도넛과 빵 등을 굽는다.

 

  • 그런데 이 집은 Grahame가(家)가 시작한 것이 아니다. 원래 Alphaeus Patterson이 설립하였고, 현주인 Mr. Grahame의 할아버지가 이 빵집에서 21년 동안 일을 하고 가게를 1960년에 사들이면서 Grahame가가 운영을 시작하였다. 이 가게는 현금과 수표(cheque)만 받는다.

 

  • 캐나다 역사적인 장소로 선정이 된 이 곳은 캐나다 빵집 중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남은 나무로만 빵을 굽는 빵집이다. 나무에 불을 지피는데만 무려 2시간이나 걸린다. 이 집의 케이크 도넛(cake doughnuts)은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제품이며 여러 세대가 하키 연습 전이나 후에 와서 사먹곤 하는 그런 곳이다.

 

  • 현재 Mr. Grahame은 52세로 그의 아버지가 2005년에 소천하였을 때 가게를 물려받았다. 그는 2:30AM에 일을 시작해서 5:30PM까지 일을 한다. 중간에 잠깐 낮잠(power nap)을 정오에 가지기도 한다. 그의 누나인 Ms. Wilson은 58세로 가게가 가장 바쁜 날에 와서 일을 돕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남매가 다른 일을 하다가 빵집 운영을 물려 받았다는 점이며, 그들의 부인과 남편은 집안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맞벌이 부부이기도 하다.

 

  • Mr. Grahame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많은 돈을 벌지는 않아요. 생활비를 벌고 있고 공동체에 섬긴다는 의미가 더 깊죠. 고객서비스에 많은 사람들이 만족해하며, 사람들과 대하고, 그리고 어린 아이들이 자라서 가정을 이루는 것을 봅니다.”

 

  • 그의 성공 비밀은 항상 신선하고 가장 좋은 질의 제품을 내놓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물가가 상승하는 추세에 싸우면서 가격을 높게 선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 DeSerres

  • 장소: 캐나다 전역에 34개의 체인점
    1908년에 설립
    생존 전략: 쉽게 구할 수 없는 미술 관련 제품을 판매

 

  • 기업의 소유자인 Marc DeSerres는 가게를 할아버지부터 물려받은 손자로, 매일마다 미술가가 생기는 것이 그의 믿음이라고 설명했다. DeSerres는 현재 700명을 고용하는 가게로 페인트, 캔버스, 다른 미술재료를 판매한다. 전체적으로 1년에 $50 million~$100 million 매출을 상회한다.

 

  • Mr. DeSerres는 미술애호가이며 그의 몬트리얼 본사에는 Edward Burtynsky와 Vik Muniz 등 화가의 작품이 벽에 걸려있다. 그는 Musée d’Art Contemporain 몬트리얼 박물관의 의장이기도 했다. 그런데 몇 십년 동안 가게가 어떻게 생존했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딱히 설명을 하지 못했다. “솔직히, 캐나다에서는 이젤을 살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 특산물 취급을 받기 때문에 큰 비즈니스인 것 같습니다.”

 

  • DeSerres는 1908년에 당시 28세였던 할아버지가 몬트리얼의 Sainte-Catherine과 Saint-Denis 길 교차로의 코너에 있는 철 공방을 사들이면서 시작되었다. 할아버지는 이곳을 철물점(hardware store)으로 시작하여 배관과 난방 기구를 유통하기 시작하면서 비즈니스를 성공시켰다. 1950년초에 아버지였던 Roger DeSerres가 물려받았을 때는, 굉장히 다양한 제품을 파는 체인점으로 성장해 있었다.

 

  • “1950년대의 소매업의 도전은 가게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급처를 확보하는 것이 도전이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그의 인생이 물품을 확보하는 싸움이었다고 설명하곤 했습니다.”

 

  • 1973년이 이르러 가게 상황이 악화되자 퀘벡 주정부는 본사건물을 몰수하겠다고 통보하였고, DeSerres는 하드웨어 공급업체로서의 수명이 다했다. 손자인 Marc DeSerres는 젊은 나이에 조그만 수의 직원과 함께 미술용품을 공급하는 데 주력했다.

 

  • 당시에 철물점(hardward) 산업은 과열경쟁이 일어나고 있었고, 대형기업인 Rona와 Canadian Tire가 시장을 점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Mr. DeSerres에 의하면 미술제품은 “조그만 연못의 큰 물고기”가 될 수 있었다.

 

  • 그리고 Mr. DeSerres는 30년 동안 미술제품 공급에만 힘을 썼으며 미술과 관련된 다른 산업에도 진출하려고 애를 썼다. 예를 들어서 컴퓨터화가 대중적으로 유행되기 전에 그래픽 아트 시장에 크게 뛰어든 적도 있었고, 성인 색칠용 그림책이 있는 미술 치료(art therapy)와 같은 분야에도 뛰어들었다.

 

  • 현재 DeSerres는 Indigo나 미국에서 진출한 Michaels와 같은 체인점에 시장도전을 받는다. 그러나 Mr. DeSerres는 다른 분야에서 더 큰 위협을 분석한다. “저는 개인적으로 소비자의 여유분 돈이 점점 핸드폰에 들어가는 것을 목격합니다. 이것은 소매업자에게 더 적은 돈이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가정당 핸드폰은 한 달에 $300 정도 드는 비용이 되기 쉬워서 다른 여가에 돈을 쓸 기회가 더 적어집니다.”

 

  • Lloyd’s Barber Shop

  • 장소: 토론토
    1979년에 설립
    생존 전략: 좋은 서비스, 직원의 높은 충성도, 그리고 공동체 의식

 

  • 토론토 다운타운의 북서쪽인 Bloor와 Bathurst거리 동네에 대표하는 가게로, 1979년에 Lloyd Mitchell이 원래 있던 이발소를 사들이면서 시작했다. 현재는 그의 아들 Lenox Mitchell이 2015년부터 물려받아 장사를 하고 있다. Mr. Mitchell은 현재 3명의 다른 이발사랑 함께 일하고 있다.

 

  • 1980대부터 Lloyd’s 이발소는 토론토에서 급성장하는 카리브해 지역(Caribbean) 주민 공동체 형성의 사회적이자 문화적인 중심지였다. Mr. Mitchell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 곳은 당신의 민족을 만날 수 있는 곳이였고, 아는 사람을 마주칠 수 있는 그런 장소였습니다. 이발소는 공동체의 부분이었어요.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이발소에 왔습니다.”

 

  • 최근에는 카리브해 지역 출신 민족들이 토론토 도시 전역과 교외로 흩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이곳을 찾는다. “저희는 아직 멀리서 여기까지 오는 손님들이 있어요. 공동체에 대한 애착이죠. 동일하게 받는 서비스, 그리고 여기서 하는 대화 같은 것이 그들이 계속 유지하고 싶어하는 것들입니다.”

 

  • 이 가게는 솔직히 말해 별로 특별한 것이 없다. 오래된 스타일의 이발소이며 1950년대에 썼을 법한 실내장식이 아직도 남아있다. 아주 단순한 가게 앞모습과 오래된 간판 등은 매력적이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기에 와서 허브 차와 디자인 가구를 찾는다. 그들은 분위기와 대화를 즐기기 위해 오며, 정말 솜씨있는 헤어컷과 면도를 즐기고 간다.

 

  • “여기에 와서 의자에 앉는 모든 고객에게 우리의 일은 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의자에 앉은 한 명의 손님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 고객은 천 명까지 늘겠죠.”

 

  • Lloyd’s 이발소의 또 다른 성공은 직원 교체율이 굉장히 낮다는 것이다. 이발사의 개인적인 솜씨가 고객을 끌어모으고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인인데, Lenox Mitchell과 그의 이발사들은 100년 분량치를 넘는 헤어컷을 해냈다. Lenox Mitchell은 가게가 바쁠 때 더 많은 손님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는 7개의 의자만 고수한다. 왜냐하면 그는 고객이 기대하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 그동안 많은 비슷한 이발소와 헤어살롱, 스파 등이 도전을 했었다. 그리고 쇼핑몰마다 있는 저렴한 이발소 체인점도 있었다. 그러나 Lloyd’s 이발소는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Lenox Mitchell이 설명하기를, 가치를 고수하고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점이 어떤 때는 최대 이윤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만한 값어치가 있고 계속 할 명분이 생기고, 또 일을 하는데 행복하다면, 그것만으로도 살 수 있습니다.”

 

  • Kidsbooks

  • 장소: 밴쿠버와 노스 밴쿠버
    1983년에 설립
    생존 전략: 훌륭한 고객 서비스, 물품진열에 신중을 가하는 것, 그리고 가게 안의 인상적인 경험 주기

 

  • 아이들을 위한 책방으로, 직원들은 책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으며 아이들은 책에 몰두하고 부모들은 기분좋게 책 값을 지불한다. 가게는 성장의 가도를 달렸다. 그러다가 아마존이 도래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방은 살아남았다.

 

  • 2018년에 35주년을 맞이하는 Kidsbooks는 1983년에 밴쿠버의 Kitsilano 동네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아동사서(children’s librarian)였던 Phyllis Simon이 800 평방피트 정도의 장소를 대여하면서 시작했다. 그리고 1990년에 20대 초반의 Kelly McKinnon이 여름에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면서 비즈니스를 배웠다. 몇 년 후에 그녀가 일을 그만두려고 하자, 가게 주인이었던 Phyllis Simon이 가게의 절반을 그녀에게 판매하는 제안을 했다. 사업자금도 빌려주면서 말이다.

 

  • 현재 50세인 Kelly McKinnon은 그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신데렐라 이야기 같았어요.”

 

  • Kidsbooks는 성장하여 더 큰 장소로 이전했다. 가게 운영을 하는 동안 레노베이션을 무려 3번이나 하고, 2번 확장을 더 했다. 최대 4800 평방피트로 커졌다. 그리고 노스 밴쿠버에 2호점을 차렸다.
  • Ms. McKinnon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항상 성장했지만, 점차 성장했습니다. 오직 수요에 기반해서요.”

 

  • 가게의 사명(mission)은 절대 양보되지 않았다. 가게의 사명은 “아이들이 실제 읽을 책을 연결해주는 것”이다. 대형서점 Chapters가 동네에 등자했을 때도, 전자책이 등장했을 때도, 아마존이 런칭되었을 때도, Kidsbooks는 그들만의 방식을 고수했다.

 

  • “중소기업을 운영할 때, 내일을 걱정하고 현재 당장 할수 있는 일에 집중하게 되잖아요? 저는 제 가게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좋은 서비스를 받는다는 것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다른 아이의 생일파티를 가는 부모들이 급하게 들어와서 스트레스 받을 때도 무료로 선물포장을 해주며 훌륭한 선물을 선택하도록 해줍니다. 이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아마존이나 Chapters, Indigo와 같은 대형서점에서 벌어지는 일은 제가 통제할 수 없죠.”

 

  • 동시에 가게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노력한다. 매출을 관리하고 효율성을 늘리기 위해서이다. 목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운영을 할 때 투자금을 최소한 줄이는 것이다. 그리고 보이는 곳인 매장에는 돈을 많이 투자하는 것이다. Ms. McKinnon은 이렇게 요약한다. “경험이 전부입니다.”

 

  • 그러나 가게에 어려움이 닥쳤다. Kidsbooks가 처음에 렌트해서 사용했던 장소가 계약만기가 되었을 때, 건물주는 집을 짓기 위해 건물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이 때 Ms. Simon과 Ms. McKinnon은 고민을 했으나, 사명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둘은 한 회계사를 멘토로 삼고 밴쿠버의 비싼 부동산 가격에도 불구하고 한 장소를 사들였다. 이전에 레스토랑이었던 곳에 둘은 최대한 레노베이션을 하여 2016년 2월에 수천개의 책을 옮겼다.

 

  • 당시 Ms. McKinnon은 책방 장소를 옮긴 것에 불안해 했다. “우리는 5일 동안 문을 닫았었어요. 그리고 다시 열었을 때, 사람들이 계속 들어왔습니다. 이 때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요. 우리는 믿음의 도약을 했고 모든 것이 잘 풀렸습니다. 모든 고객이 다시 돌아왔고 쇼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 5300 평방피트의 새로운 책방은 35명에서 40명 정도의 직원을 고용한다. 크리스마스 기간에는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한다. 가게는 신중하게 고른 장난감을 판매하며, 전체 매출의 약 15% 정도를 차지한다. 성인을 위한 책은 가게입구에 있다. 그래서 자녀가 자동문을 지나서 가게를 나가지 않게 방지하는 배려를 하는 것이다.

 

  • 비즈니스는 출판사와 유통업자, 그리고 지역사회의 지지로 아주 잘 되고 있다. “사람들이 일부러 더 노력해서 찾아오고, 더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고 저희를 지지해서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는 매일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고 사람들의 일을 계속 얻기 위해 시도하고 있습니다.”

 

  • Plaza Bowling

  • 장소: 알버타주의 Edmonton
    1959년에 설립
    생존 전략: 볼링의 사회적 매력에 집중, 그리고 최신 트렌드를 구체화하기

 

  • 당시 에드몬튼에 북미의 오일붐으로 볼링이 유행하던 1959년에 Lawrence Stride가 다섯 핀 볼링장(five-pin bowling)을 설립했다. 이후 손자인 Trevor Stride가 볼링장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수제 맥주와 푸드트럭 메뉴를 추가하고, 오래된 볼링레인을 다시 손보아 20대에서 30대의 젊은 손님들이 밤늦게 즐기도록 하였다.

 

  • 볼링의 세계에는 혁신이 더디게 온다. 볼링핀을 자동화하고 점수를 컴퓨터화 하는 것 외에는 캐나다가 발명한 볼링은 다섯핀 볼링 게임 밖에 없다. 그런데 그것은 1909년에 발명이 된 오래된 혁신이다. 그래서 Trevor는 볼링 게임의 사회적 매력에 더 집중했다. 그는 부엌을 레노베이션하고 수제맥주를 고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오래된 메뉴를 다시 새롭게 해서 경기장에서 먹을 수 있는 편안한 음식으로 재편했다. 나초(nachos), 수제 감자튀김, 그리고 시큼한 사우어도우(sourdough) 빵 위에 치즈를 녹인 음식 등이 있다.

 

  • Trevor는 이렇게 설명한다. “사회적인 면에 집중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볼링은 정말 재미있고 우리는 볼링을 우리가 즐기는 사회적인 요소에 둘러쌓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수제 맥주, 좋은 음식, 신나는 음악, 밤늦게 까지 하는 파티 등이 새로운 고객을 끌여들이는 요소입니다.”

 

  • 볼링장을 찾는 단골은 볼링 대회와 아이들의 생일파티용으로 사용한다. 지금은 DJ 나이트 파티, 월요일에 음식을 할인해서 판매하는 푸드트럭 월요일 행사를 연다.

 

  • “우리의 주고객은 신나는 밤을 보내기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수제맥주와 수제치즈(artisan cheese)에 관심있는 사람들입니다. 푸드트럭과 DJ를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전략이 먹히고 있습니다.”

 

  • 캐나다에서 볼링을 하는 사람수는 2001년 뒤로 바뀌지 않았다. 캐나다 통계청에 의하면 20세에 44세 사이에 볼링을 하는 사람수는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노인들과 10대들은 볼링을 덜하고 있다. Trevor의 아버지는 현재 볼링장을 찾는 고객의 평균연세가 25년이나 젊어졌다고 추측한다. 그는 아들이 소셜 미디어 홍보와 음식 산업에서 일해본 경험이 비즈니스 판도를 바꾸었다고 칭찬한다.

 

  • Samosa and Sweet Factory

  • 장소: 토론토 (Etobicoke 지역)
    1989년에 설립
    생존 전략: 기술을 이용해 원가절감

 

  • 삼각형 튀김만두인 남아시아 요리인 사모사(samosa) 식당을 Harpal Sandhu가 열었을 때, 손님이 많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손해를 보았다. 몇 년뒤에 그의 형제 Harminder가 동업자로 합류하여 토론토의 다른 식당과 슈퍼에 유통했을 때도 이익을 쉽게 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사모사가 인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빨리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비즈니스 모델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었다. 형제들은 자동화(automation)를 시도해보기로 결심했다. 1999년에 형제들은 페로기(perogie) 동유럽 만두기계를 사서 사모사 만드는 기계로 재조립했다.

 

  • Harpal Sandhu는 자동화에 투자한 것이 성공적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러자 일주일에 1000개의 사모사를 원했던 고객이 갑자기 2000개를 원했다. 심지어 해외에서 사가는 소매업자와 유통업자도 늘었다. Samosa and Sweet Factory가 이때 설립이 되어 캐나다, 미국, 호주에 사모사 제품을 유통하기 시작했다.

 

  • 공장은 하루에 15만개의 사모사를 생산한다. 근처 소매업에게 소량을 팔고 나머지는 다른 곳으로 팔린다. 공장은 사모사 외에도 인도 디저트와 채소 파코라(vegetable pakora) 등을 만들기도 한다. 대부분 제품은 자동화된 기계나 반자동화 기계로 만들어지며 가격을 저렴하게 유지할 수 있는 경쟁력이 된다.

 

  • Harpal Sandhu는 비즈니스의 성공을 가족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비즈니스 성장은 가족이 함께 해서 가능했습니다. 형제의 두 아내도 공장의 품질관리를 위해 일을 한다. 조카는 소매업 쪽에 일을 한다. 그의 아들은 생산 라인을 책임진다. 그의 며느리는 회계를 담당한다.

 

  • 특히 그의 아들은 이 가족 비즈니스에 많은 부분을 이미 경험했다. 밑바닥부터 일을 해서 도랑을 청소하고, 사람들 밑에서 일을 하고, 화장실 청소를 하는 등 다 해보았다고 한다. 그의 아들은 공장에서 일을 한지 8년이 되어간다. 덕분에 그는 공장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안다. 아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저는 옆에 지나가면서 제대로 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 수가 있어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개선할 수 있는지 알수도 있습니다.”

 

 

  • Harmsworth Decorating Centre

  • 장소: 온타리오주의 Brampton (토론토 북쪽 지역)
    1893년 전에 설립
    생존 전략: 검소하게 살기, 세입자로만 살기 않기

 

  • 5번째 세대로 이어받아 가정용 페인트 가게를 운영하는 David와 Scott Harmsworth는 Brampton 시내에서 1904년에 시작한 가게를 계속 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을 색상 전문가, 디자이너, 역사가로 본다. David는 미술과 건축을 사랑하며 1981년부터 가게에서 일을 했다.

 

  • 현재 56세인 David Harmsworth는 가족의 역사를 강조한다. “비즈니스 자체만 전부가 아닙니다. 비즈니스의 역사가 저의 흥미를 끕니다. 가족의 일부분이죠.”

 

  • David의 고조할아버지인 James William Harmsworths는 약 1887년 경에 비즈니스를 시작했다고 알려져있다. 정확한 날짜는 아무도 모르나, 확실한 것은 1890년 전에부터 비즈니스를 했다는 점이다. 특이한 점은 가게운영 방식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게에 형제와 아버지 세 사람만이 일을 한다. 직원을 추가로 고용하고 싶지만, 서두를 일은 아니라고 한다. 철물점 대형 체인점이 여기저기 퍼져있는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확실한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우리는 대기업에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이 특정 종류의 고객을 모은다고 생각하며, 그 고객들은 좋은 질 보다는 가격이 더 중요하겠죠. 서비스를 별로 신경 안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렇게 시작했다가 저희에게 왔을 때 다른 점을 느끼고 옵니다. 고객이 여기에 들어서는 순간 제대로 물건을 얻도록 도와줍니다.”

 

  • David는 트렌드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며, 공동체에 활동하고 있고, 검소하게 살며, 세입자로만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의 고조할아버지는 이 장소를 구매했기 때문에 렌트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검소하게 살고 세입자로 만족하는 것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David는 그의 차세대가 가족 비즈니스를 물려받는 것에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Halifax Seed Co.

  • 장소: 노바스코샤주의 Halifax와 뉴브런스윅주의 Saint John
    1866년에 설립
    생존 전략: 전문적인 직원 관리와 최신 트렌드 구현

 

  • 151년이 된 종묘(seed) 및 정원(gardening) 비즈니스는 세계경제 대공황과 대형 슈퍼 체인점의 시대, 그리고 심화된 가격경쟁 등을 다 이기고 생존해냈다.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원예학 비즈니스인 Halifax Seed Co.는 온라인 쇼핑과 배송비 문제 등을 해결해 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지역 음식 추세에 새로운 활력을 얻고 있다.

 

  • 4번째 세대로 공동운영자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Emily Tregunno는 최신 추세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음식을 직접 기르는 추세가 저희와 연관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최신 트렌드에 편승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 동부 캐나다에 혁신적이고 새로운 제품을 소개하는 것 외에, 회사는 직원 중에서 최고전문가를 구성하는데 노력을 한다. 현재 50명의 정직원이 Halifax와 Saint John에 걸쳐있다. 한 직원은 회사에 40년 이상 함께 일하고 있다고 한다. “저희의 장점은 직원입니다. 그들이 고객에게 전달해주는 전문지식이 중요합니다. 고객이 첫 토마토를 기르려고 하거나 골프코스가 2일 대회에 준비되는 데 조언을 해줄 수 있습니다.”

 

  • 현재 공동소유자로 일하고 있는 Emily와 Ali 자매는 각각 다른 직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Emily는 심리학에, Ali는 스포츠와 레크레이션 전공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2012년에 돌아가시면서 새로운 분야의 일에 함께 뛰어들게 되었다. Emily는 이렇게 표현한다. “이 비즈니스에 저희의 흥미를 이끄는 매력적인 요소들이 있음을 함께 깨달았어요.” 그리고 그 매력요인 중에는 두 자매가 커가는 것을 지켜본 오래된 직원들의 고용을 보장해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 특히 원예학 산업에서는 풀타임 직장을 고용하는 것이 드물다. Halifax Seed Co.는 의료혜택 외에도 5%의 연금기금을 지원해주기도 한다. Emily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저의 가장 큰 책임은 50명 넘는 직원들이 가족을 돌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할 때 그녀의 가족도 돌볼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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